기후활동가와 죄책감 (3)
이송희일 책 ‘기후위기시대에 춤을 추어라’
지난 두 주에 걸친 칼럼에서 개인적 실천으로 기후위기를 지연시키자는 것은 효과가 미미하며 탄소배출을 주도하는 화석연료 기업들의 프레임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마침 영화감독이자 최근 기후위기 인기 강사가 된 이송희일(백야, 야간비행등 여러 화제영화를 제작했다) 님의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라는 책을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지난 두번의 칼럼을 쓴 뒤에야 첫 페이지를 열었다. 서문에서 고백하듯 그는 기후 전문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영화감독으로 평생을 보내온 그는 과학적 사실 나열 대신 이면의 스토리를 영화감독의 눈으로 더욱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이번 칼럼에는 그의 책을 요약, 발췌해 지난 글들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본다.
2003년 탄소 발자국이란 개념을 홍보하기 시작한 BP사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정유회사다. 연간 1억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들여 2003년부터 4년간 미국 영국 등에서 광고 공세를 퍼부었다.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를 구체적 이미지로 그려 식탁의 탄소발자국, 항공여행의 탄소 발자국을 계산하게 했고 그 결과 기후위기의 책임을 개인화 하는 강력한 신화적 메타포를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BP사를 포함한 세계 100개 대기업이 전세계 탄소배출양의 71%를 배출하며 상상할 수 없는 돈을 긁어 모았다.
과거 담배회사들은 “정부가 흡연을 통제하면 다른 행동도 통제할 것”이라며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담배기업과 소비자 중에서 누가 더 질병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한 소송(Cipollone Vs. Liggett Group)에서 기업측 변호인단은 “시폴론 부인이 원해서 담배를 피웠다. 그녀는 흡연을 좋아했다. 그녀 스스로 선택했다.”라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했다. 그러니 잘못은 담배를 만든 회사가 아니라 그 담배를 선택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불량식품이라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던 현재 한국의 대통령은 바로 이 오래된 프레임을 그대로 차용했다.
담배기업과 석유 기업들은 자신들은 무고한 중립으로 가장한 채 위험과 불행한 결과는 철저하게 외주화, 사회화, 개인화 시키며 이윤을 극대화 했다. 미국의 총기 산업, 가당 음료와 정크 푸드 산업, 플라스틱 등 상당수 기업들이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강조함으로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사회적 비용을 개인과 사회가 떠안게 만들었다. 총기 사고의 충격은 피해 당사자들의 몫으로 환원되고 사후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됐다. 매년 4억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지구를 뒤덮게 된 것은 이를 선택한 소비자들 탓이다. 자동차 사고는 소비자의 욕구에 따른 것이며 도박중독은 자유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들의 죄악이다. 따라서 기후위기는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개개인의 욕망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화석연료라는 마약에 중독된 소비자 탓이다. 개인들은 그저 상품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고립된 원자들이다.
환경단체들은 앞장서서 이메일 지우기, 쓰레기 줍기, 재활용하기, 전등 하나 끄기, 텀블러 사용, 지구의 날 행사 같은 실천들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파종하고 ‘개인적 만족감’을 수확한다. 물론 개인적 실천을 격려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분자화 된 개인적 실천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욕조의 물이 넘치지 않도록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다. 플라스틱을 생산하지 못하는 법령을 만들고 기업들을 규제하며 스스로 생분해 제품을 연구하고 투자하도록 강제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다.
개인적 실천을 종용하는 프레임은 그것 자체가 효과적이지 않은 전략이면서 행성 위기시간을 지연시키고 약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불평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한다. 그러니 개인적 차원에서는 도덕적일지 모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는 비윤리적이다. 역설적이게도 기후위기에 대한 가장 좋은 개인적 실천은 바로 그 ‘개인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저 없이 발로 걷어차는 것이다. 벽장 문을 열고 나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함께 연대해서 기업을 압박하고 정치적 힘을 발휘해야 한다.
여기까지 그의 책 3장을 부분부분 옮기거나 축약, 재서술하는 동안 저자의 의도와 달라진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직접 책을 읽어야 정확한 의도롤 파악할 것이다. 탁월한 스토리 텔러로서의 서술에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사진>개인적 실천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는데 효과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를 통해 연대하고 함께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기후시민들을 뭉치게 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BBC 그래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