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Evan Vucci, AP 통신

트럼프 표 ‘미끼 투척’ 정치

기후정책, 미국 연방에서 완벽히 지워진다

 몇 해 전 우리 집에는 골든 리트리버 종의 제법 큰 개가 있었다. 어쩌다 고기집에서 얻어온 커다란 소 뼈를 주면 이 녀석은 단단한 소 뼈를 부셔먹지 못해 그저 앞에다 두고 입맛만 다셨다. 뼈에 붙은 살점이 상온에 오래 노출돼 상할까 봐 빼내서 살을 발라 삶아주고 싶어도 주인인 나에게조차 으르릉 거리며 뼈를 내놓지 않았다. 이 녀석과의 대치를 평화롭게 끝내는 방법이 있었다. 맛있는 간식을 옆에 주면 그걸 먹으러 움직인다. 조금 더 먼 곳에 주면 뼈를 두고 달려간다. 이때 뼈를 꺼내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방법도 비슷하다. 그들에게 다른 먹이감을 던져주고 그에 집중하는 사이 하려던 진짜 일을 해내는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꺼번에 수백개의 충격적인 정책을 거의 동시에 결재해서 처리했다. 반대하려 무슨 결정을 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기껏 몇 가지 반대를 하더라도 나머지는 상대가 관심도 갖기 전에 그냥 진행된다.

 트럼프는 취임식날 백여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어 1주일 사이에 70여가지가 넘는 기후정책 폐지 명령에 서명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그게 끝이 아니라 아직도 계속된다. 그 행정명령이 문제가 있거나 상호 모순돼도 상관없다. 경제에 어떤 충격을 줄 것인지, 미래 정책에 어떤 선효과를 거둘 것인지의 평가도 사치다.  

 불과 한달만에 트럼프가 서명한 기후 관련 정책도 숨가쁘기만 하다. 워싱턴과 여러 주, 민간분야를 가리지 않고 반기후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전세계 대부분 국가가 가입한 파리 기후협정 탈퇴는 당연했고 환경보호청과 에너지부에서 수천명이 해고됐다. 물론 다른 부처도 비슷하기는 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공무원들이 해고될 것으로 보인다. 너무 빨리 해고하느라 필수 요원까지 해고됐다가 며칠만에 다시 복직되는 해프닝까지 있다고 한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에 주던 여러 리베이트가 없어져 사업을 추진하던 수많은 기업들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됐고 기존 사업마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저소득층에게 주던 태양광 설치 보조금도 전기자동차 충전기 설치를 위한 수십억 달러의 연방 정부 예산도 삭감했다. 심지어 불법 삭감이라고 법원이 판결했음에도 되돌리지 않는다.  어디서 본 듯한 행태다.

 수천억 달러의 청정에너지 세금공제를 철회하려 하고 있고 국립과학재단(NSF)에서는 대화 내용이 트럼프 끄나풀에게 노출되면 불이익을 당할 우려 때문에 더 이상 회의를 녹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지난 화요일 NSF에서 170명이 해고됐고 더 많은 해고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 388명이 해고된 미국 연방 환경보호청(EPA)에는 보조금 지급을 위해 주 정부 공무원이나 수혜 대상자들과 해오던 소통을 전면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또 모든 정책과 프로그램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활동과 용어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기후변화가 들어간 정책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철퇴를 피하려면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십억 달러의 기후위기 대응 프로그램도 보조금을 중단했고 관련 직원 1100명에게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P)에 미국 정부 소속 과학자들은 더 이상 참여하지 말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기후변화 연구에 관한 세계 최고의 과학자 그룹인 IPCC는 몇 년에 한차례씩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를 모아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세계 각국에 대응 방식을 권고하는 기관이다. 미국의 많은 과학자들인 이 연구에 주도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다음 주 중국에서 열리는 IPCC 국제회의 마저도 타격을 입게 됐다. 이 회의는 미국 항공우주국의 수석과학자 케이트 캘빈이 공동의장을 맡을 예정이었다.

1기 때 보다 몇 십 배 독해진 트럼프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왕이 되려는’ 것이라 표현했듯 세계 제패와 영구집권을 꿈꾸며 손바닥에 왕자를 몰래 써 놓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