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고 있는 재스퍼 시내(크리스토퍼 윈저 제공).
산불이 휩쓴 뒤 간신히 살아남은 그리즐리 곰이 지친 모습으로 앉아있다.(재스퍼 국립공원 제공)

인기관광지 재스퍼 국립공원 최대재앙

화석연료문명의 종말 시나리오

 “이게 무슨 말이죠?”

 토론토 인근 생태 숲(G. Eco Farm) 산책로 입구에 붙은 사인을 보고 지인이 물었다.

 손바닥 두개 넓이의 나무판에 새겨 놓은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한다면 내일 이 숲은 사라질지 모른다’는 글귀다. 이 판은 토론토생태희망연대(HNET)가 돌보고 있는 인근 생태 숲 산책길 초입에 붙어있다. 기후위기에 대해 남의 일로 생각해 온 그 지인에게 “우리가 배출한 탄소로 40~50도를 웃도는 강렬한 열돔에 덮일 수 있죠. 또 긴 가뭄으로 산불 빈도와 강도가 심해지기 때문에 몇 백년 이상 보존된 이 아름다운 숲과 산책길도 한 순간에 불에 타 사라질지 모릅니다” 고 설명하자 얼굴이 굳어졌다. 편백나무와 솔송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온갖 이끼와 지의류, 버섯류가 자라고 있고 사슴의 피난처이며 족제비, 여우, 비버, 코요테, 부엉이, 너구리, 야생터키, 블루제이 등 수많은 생명으로 가득찬 이 숲의 생명이 검은 숯으로 변할 것이라 상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 우리가 사는 남부 온타리오는 아직 무사하지만, 알버타주는 전혀 다르다. 지난 한주간의 산불로 재스퍼 시내 건물의 30퍼센트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됐다. CBC 뉴스에 따르면 다행히 학교와 병원 등 주요 공공건물은 잘 준비된 덕분에 지켜냈지만 재스퍼 시장도, 소방서장도, 비상재난관도  화재로 집을 잃었다.. 재스퍼 일대는 5천여 주민과 5천여명의 관광객, 1만5천여명의 공원 관계자와 방문객 등이 있었으나 소방 등 필수 요원을 제외하고 모두 탈출했다. 재스퍼 국립공원은 지난 100년 동 가장 극심한 피해를 불과 1주일만에 겪었다. 8만9천 에이커가 불꽃 속에 사라졌다. 숲만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던 야생 생물의 손실로 다시 관광객을 유치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지도 모른다.

 지난 6월초, 나는 한국에서 찾아온 친척들과 함께 캘거리에서 캠핑카를 빌려 밴프와 재스퍼를 돌며 자연 속에 살아 숨쉬는 생명들을 보았다. 그 때 머물렀던 재스퍼 타운 바로 남쪽 와피티 캠핑장에는 엘크가 이웃처럼 돌아다니며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다가왔다. 그 일대 산속 길에서는 흑곰과 불곰을 비롯해 산양도 손쉽게 만났다. 캠프장에선 저녁이면 무제한 제공되는 장작으로 불을 피우며 3천미터 설산을 배경으로 밤을 맞았다. 산림에는 죽은 나무가 많아 장작은 넘쳐났다. 눈 덮인 산 중턱에는 스커트처럼 암녹색 침엽수림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눈산에서 내려오는 밤바람은 차가웠지만 장작불은 그에 충분히 맞설 만큼 온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낮에 산 속으로 다가가 만나는 숲은 이미 달랐다. 생명이 넘쳐나야 할 그곳 숲에는 웅장한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하나 걸러 하나씩, 어떤 곳은 눈길 닿는 곳까지 모두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가지마다 잎은 없이 이끼 종류만 검은 머리카락처럼 뭉치고 늘어져 바람에 흔들렸다.  처음엔 전에 산불에 탄 흔적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중간중간에 몇몇 나무들이 살아 있는 걸로 봐서는 산불 흔적이 아니었다.

 현지 공원 관리자는 “침엽수를 죽이는 딱정벌레들이 이상 증식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답했다. 구글링을 해보니 이 벌레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따뜻하고 건조해진 날씨가 이어져 겨울에도 살아남는 개체가 급증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수백만 헥타르의 숲이 말라죽었다. 다행히 2010년대 이후 겨울이 추워지며 확산이 멈추긴 했지만 이미 죽은 나무들은 잘 말라서 캠프장의 장작으로 또 산불의 원료로 최적이었다.

 게다가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어나며 도시화가 진행됐고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주엔 12만년 이래 가장 더울 만큼 악영향을 끼치며 ‘퍼펙트 스톰’의 재료가 모두 마련됐다. 지난 26일 밴프 국립공원 소속이었던 클리프 화이트 박사는 캘거리 헤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밴프와 재스퍼는 재앙적인 산불을 막기위해 노력했지만 자연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라며 밴프 역시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재스퍼와 밴프만 그럴까. 토론토 인근 우리의 생태숲은 물론 지구촌 어디라도 이런 재앙은 일어날 수 있다. 그 동안 쌓아온 화석연료 문명의 종말을 여기저기서 예고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정필립 (HNET 대표활동가)